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30일 11시09분 조회:193
인물이름 : 전정선

 

- 재일조선족녀성회 전정선회장의 아름다운 소망

새로운 삶의 현장에서 희망을 이뤄가는 사람들의 즐거운 쉼터
다채로운 여가활동, 소중한 마음으로 보듬는 따뜻한 보금자리


 동북아지역에 함께 위치한 중국과 일본은 바다를 사이 두고 마주 바라보는 나라로 수천년의 세월을 지나며 많은 이야기를 엮어왔다. 두 나라는 지난 20세기 초반 일본제국주의 만행으로 뼈아픈 과거의 력사를 남겼지만 그보다 많은 세월을 우호적인 린방으로 이웃해 왔다. 중국의 신화전설을 모은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에는 “저 멀리 동쪽바다 한복판에 부상국(扶桑國)이라고 부르는 신선이 사는 나라가 있다.”라고 적혀있고 항간에도 진시황이 불로초를 얻고자 신하 서복에게 동남동녀 3000명을 60척의 배에 나누어 싣고 부상국을 향해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신비한 나라 부상국이 바로 지금의 일본으로 예로부터 상상속의 신비한 나라였다. 국문이 열리고 개혁개방이 진전됨에 따라 중국조선족은 한국에 이어 이 전설의 나라에도 새로운 삶의 현장을 펼쳐가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개혁개방이후 특히는 2천년대 새세기를 맞이한 이후 일본은 한국에 이어 중국조선족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떠올랐다. 현재 일본에는 근 10만명에 달하는 중국조선족이 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지난 80년대부터 류학생으로 건너간 이들로 학업을 마치고 현재 일본현지에서 계속 사업하고 생활하는 젊은이들이다. 10년, 20년 세월이 흘러 이제 이들이 결혼하고 가족을 이뤄 형성된 재일조선족사회에는 새로운 과제가 대두하였는데 바로 아이들과 녀성문제로 일본에서 출생한 아이들의 교육과 일본에서 생활하는 조선족녀성들의 취직과 임신, 육아 등에서 발생되는 고민거리들이였다.

 

작은 소망으로부터 이뤄내는 아름다운 꿈

현재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녀성들의 년령대는 30대가 가장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는 어머니들이기에 제일 큰 관심사로 2세들의 교육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일본에서 낳은 아이들이 이제 취학적령기에 이르러 일본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늘어나 이런 아이들에게 중국어와 조선어를 가르치려면 별도의 시간을 내여야 하였다. 또한 그녀들 자신들도 중국조선족으로 일본에서 생활하여야 하기에 이들은 임신, 육아, 교육, 자녀부양 등 여러 문제와 일본의 법률, 세금, 비자 등 문제에서 봉착하는 고민과 난제가 수두룩하였다. 이와 같은 현실에 직면하여 전정선녀사는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펼쳐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와 즐거운 쉼터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재일조선족녀성회의 발족

전정선녀사의 따뜻한 소망은 마침내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2008년 2월 10일, 그녀의 소박한 꿈을 따라 모여온 녀성들과 주변의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재일조선족녀성회”가 발족되였다. 이 단체는 일본에 사는 중국조선족녀성들을 위한 모임으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가꾸고 일본사회를 알아가고 재일조선족사회와의 교류도 폭 넓게 펼치는 가교역할도 담당했다. 녀성회는 설립되여 5년 가까이 운영되면서 어린이들에게는 우리말배우기, 동화들려주기, 종이접기와 같은 재능을 가르쳐 주고 어머니들에게는 김치교실, 무용교실, 꽃꽂이교실, 실내스포츠교실 그리고 일본전통복장교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학술세미나, 무역교역회, 국제교류회 등 많은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여 일본사회속의 조선족녀성단체로서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였다.

 

 


 

부상국에 이어진 인연

전정선녀사는 연길에서 태여났다. 80년대 중반까지 연길의 한 기업에서 직업교육과 강사, 종합통계과 통계원으로 일하였으며 80년대말부터 90년대말까지 연길시정부 상해주재판사처의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한국구구피혁유한회사 상해판사처, 상해로렌스시계유한회사, 상해현대전자유한회사 등 외자기업에서 대표, 부총경리, 자문위원 등을 맡아 일했다. 이 과정에서 결혼생활의 실패로 아픔을 겪고 있을 때 문득 새로운 인연으로 일본학자 카사이 노부유키씨를 만나게 되었다. 일본 히데야키대학교수인 그는 동북아경제전문가로 일본 아세아경제문화연구소 리사이며 한국 서울대학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중국과 한국, 일본의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과 인정세태까지도 깊이 료해하고 있는 학자였다. 한국에서 류학생활한 경험도 있는 그는 조선민족의 풍속습관에 매우 익숙하고 조선말도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며 마음속으로부터 조선민족을 사랑하고있던 사람이였다. 국적도 다르고 전공도 다른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모든 차이점을 지우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공동한 지향을 가지게 하였다.

 

부상국에 피여나는 아름다운 진달래

2000년, 카사이 노부유키씨와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오게된 전정선회장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동안 상해에서 외자기업의 임직원으로 일하였는데 어느 순간 대학교수의 안해로 주부로 변해 버린것이다. 이런 변화는 자신도 신기하게 생각되였다. “어쩌면 사업가와 학자란 참 거리가 먼듯한데 오히려 그렇게 먼 거리였기에 서로에게 리해관계가 없었고 그런것들이 마음을 더 다가가게 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한번 그녀는 지인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5년여의 시간은 일본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주부라는 새로운 배역에 충실한 시간이였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따라 학술회, 세미나 같은 행사에도 많이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조선족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의 요청으로 어느 무역스쿨에 나가게 되고 나중엔 협회의 크고작은 일을 도맡아하는 사무국장으로 임명받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일본의 사회생활에 다시 접촉하게 된 그녀는 자연히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자신의 사업본능이 깨어남을 느끼게 되고 눈길은 자연히 자신과 같은 주변의 녀성사회에 돌리게 된 것이였다.

 

작고 소박한 꿈을 꽃피워

재일조선족녀성회를 설립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면서 그녀의 꿈도 나날이 무르익어갔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작고 소박한 것으로 다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 같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이 작은 것들의 작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녀성회 홈페지의 메인화면에도 그의 꿈에 대한 생각이 한줄로 적혀있다. “작은 샘물이 바다를 이루듯이 우리의 소중한 참여가 힘이 됩니다.”


일본이라는 이 새로운 삶의 현장에서 희망을 이뤄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쉼터를 마련해주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펼쳐주려는 그녀의 작고 소박한 꿈이 아름답게 피여나기를 기원한다.

기자 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