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데 습관된 나라 버리는데 습관된 나라.doc

 

미국에서 생활한지 4년이 넘는 지금까지 나는 생활에 필요한 가장집물을 하나도 산일이 없다. 나의 손재간이면 미국인들이 버린 고장난 물건들을 수리해서 새것처럼 얼마던지 쓸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사람들의 일회용 의식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은 집에서 쓰던 물건이 고장나면 다시 수리해 쓰는 법이 없다. 고장난 물건을 수리할 수리부도 없거니와 수리부가 있다고 해도 새로 사기만 비싸고 귀찮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는데만 열중하고 수리해 쓰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것은 미국사화자체가 가지고 있는 병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미국사회는 수리산업과 수리노동을 기피한다. 때문에 수리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희귀하여 수리공을 불러들이기가 아주 힘들다.  수리공을 찾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리요금을 지불하면서 바가지를 쓰기 쉽상이다. 그리고 쓰던 물건이 고장나면 고쳐쓰지 않고 버리는 중요한 원인은 항상 새로운 류행이 넘쳐나기 때문에 궂이 낡은 류행의 것을 고쳐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월부로 살수 있거나 가격이 저렴하기에 당장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리하는 값과 새로 사는 값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서 자동차를 수리할일이 있으면 잘아는 미국현지인을 대동하여 갔다. 언어의 소통이 윤활하지 못하고 또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자동차수리공들이 속임수를 쓰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한때 나와 함께 일하고 있었던 미스터김은 회사에서 내여준 차외에 평소 쑈핑하러 다닐때에 쓰는 니싼 중고승용차를 갖고 있엇다. 어느 부터인가 승용차가 모병이 생기여  휘발유가 조금씩 새였다. 수리부에 갔더니 이틀후에 오라고 했다. 자기들이 원인을 체크하고 수리하니 시간이 걸린다는것이였다. 할수 없이 차를 수리부에 맡기고 다른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틀 뒤에 찾아가니 수리하기 힘들었다면서 수리비 70달러를 받아 칭기는 것이였다. 우리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틀뒤에 보니 기름이 계속 밖으로 새였다. 우리가 차밑에 기여 들어가 보니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도 않았다. 이튿날 영어를 잘하는 친구 챨리를 데리고 가서 따지니 이들은 말을 얼버무리면서 책임을 서로에게 떠밀었다. 영어를 잘하는 챨리가 그들과 따지고 들어서 두번째는 무상으로 수리하기는 했지만 휘발유가 조금씩 계속 흘렀다. 화가는 미스터김과 나는 홈디포에가서 쇠를 땜질하는 <스패시오 구루>특수풀을 사다가 기름이 새는 곳에 발랐다. 그후부터 더는 기름이 새질 않았다.

미국 사회는 게임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수리공들도 고객들과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간단한 수리거나 지어는 라사 하나가 빠져 5달러로 끝날 수리를 60달라로 견적해 고객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도박한다. 고객이 의견이 없으면 수리공들은 앉은 자리에서 55달러를 버는것이다. 바로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만약 고객이 차를 아는 사람이여서 따지고 들면 수리공들은 한보 한보 물러서면서 값을 내린다.  때문에 미국사람들은 자동차가 고장나면 수리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보험회사가 알아서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당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라 한다. 비단 자동차뿐만 아니다.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물건도 고장나면 수리하는 쪽보다는 버리는쪽을 택한다고 한다.

 미국의 뉴욕에는 맨하탄과 풀러싱을 오가는 7호선 써부워<subway>이가 있다. 7호선 써브워이를 타고 82 내리면 나의 양어머니 필복덕여사가 살고 있다. 나는 일요일이면 82가에  계시는 양어머니 집에 놀러간다.  양어머니집에는 오래된 미싱 한대 있었다. 양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미싱을 사용해 왔다. 절로 옷도 해입고 옷을 만들어서는 자식들에게 주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전 미싱이 고장나 쓰지 못한다면서 안타까워 했다. 요행 수리공을 불러 수리했는데 고장이 났다는 것이였다. 나는 미싱에 대해서는 파악이 있는 편이다. 내가 어릴 우리집에도 미싱이 있었다. 옷만드는 솜씨가 있는 어머니는 미싱으로 우리 형제들의 옷은 물론 동네의 옷을 거의 만들어주었다. 어릴때 혹시 나의 옷을 만들라치면 나는 어머니가 내몸을 재일때부터 견적을 해서 재봉틀을 돌리고 옷이 완성될때까지  새옷을 입게 된다는 흥분과 기다림에 어머니곁에서서 미싱을 돌리는 어머니를 동무했다. 그러다 미싱이 고장나 어머니가 이것저것 수리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고중에 다닐때는 어머니를 도와 미싱을 직접 수리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나는 미싱에 손을 대보기로 작심했다. 나는 양어머니와 미싱을 수리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양어머니가 외출한 틈을 타서 미싱을 열어 보았다. 나는 먼저 미싱 바늘이 나드는 밑실이 있는 미싱북을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먼지가 끼였고 실밥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도 천쪼박들이 끼여 있었다. 나는 제꺽 스꾸 쥬라이부를 <라사조이개>얻어 미싱부속을 뜯어내여 깨끗하게 청소를 하였다. 기계에 끼여있는 먼지와 실밥을 깨끗이 뜯어내고 청소한후 기름을 치였다. 그리고 북에 믿실을 넣고 전기를 넣어 미싱을 작동동시켜 보니 제법 잘돌아갔다. 작은 헝겊을 얻어 겹쳐놓고 실을 박아 보니 잘되였다. 저녁에 양어머님이 들어오자 나는 미싱을 수리했다고 했다. 양어머니는 내가 미싱을 수리했다는 이야기를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네가 어떻게 그렇게 힘든 일을 할수 있냐?>>

  <<한번 시험해 보십시요>>

양어머님은 반신반의 하면서 미싱을 돌려보았다. 미싱은 고르로운 소리를 내면서 제법 잘돌아갔다. 어머님은 너무 반가와 <<너의 기술이면 미국에서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거다>>라고 하면서 거듭 치하했다. 그러면서 맨하탄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에서 아들이 미싱을 수리했다고 희소식이나 되는덧 알리였다. 양어머니는 내가 미싱을 수리한 이야기를 친구들한테도 자랑삼아 이야기 했고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도 잊지 않고 했다. . 이튿날부터 80고령인 양어머님은 돋보기도 걸지 않고 옷가지들을 수리하고 만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와이셔츠 한벌을 사주었는데 내가 팔이 길다고 하자 그자리에서 팔을 줄여 딱맞게 고쳐 주었다. 원래는 집에 자리를 차지한다고 버릴려고 했던 미싱을 한푼 안들이고 살려놓았다.  이일로 양어머니 일가에게 나의 신용은 크게 올라갔다.

후날 양어머니는 자기 침대머리에 있는 랭장고에 아이스<얼음> 많이 끼여 얼음을 제거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무엇을 잘못 다쳐놓았는지 랭장고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수리해 볼려고 고민하던중 갑자기 싸우스캐롤라이나에 일자리를 옮기다보니 수리하지 못했다. 후에 보니 양어머니는 랭장고를 새것으로 바꾸어 들여놓았다. 내가 있었더면 수리가 가능할수 있었는데 아까운 새랭장고를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후에 양어머니는 랭장고를 수리할려고 수리공을 부르니 수리비를 엄청 비싸게 부르고 이핑게 저핑게 대면서 오지않자 귀찮아 아예 새것으로 바꾸었다는것이였다.

싸우스 캐롤라아나 할드워드 건축회사에서 때였다. 내가   아껴쓰는 일본제 도시바 테브 <테블 > 고장이 났다. 내가 체크해 보니  파월 스위치가 문제 있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현장에서 일하다보니 어떻게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인 매니저한테 전화를 하니 금방 달려왔다. 그는 테브 |쏘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버리고 새것을 산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금도 |까워 하는 내색이 없이 테브 쏘를 들어 쓰레기무지에 버리는 것이였다.  문제는 고장난 테브 쏘를 버리고 후에 새것을 바꾼다 해도 하루동안 일할수 없었다. 나는 앉아 휴식하면서 곰곰해 생각해 보았다. 전기스위치가 고장났으면 얼마던지 고칠수 있었다. 그리고 집짓는 현장에는 일반 조명용 전기스위치가 얼마던지 남아 돌았다. 나는 매니저가 버린 테브 쏘를 들어다 스위치를 바꾸기 시작했다. 매니저는 두눈이 휘둥그래 <<미스터 와이 >><< 무엇을 할려고 그러나?>하고 물었다.

 <<아이 땡크 챈지 파월 스위치 메비 노프러브럼>><< 내생각에는 전기 스위치를 바꾸면 문제 없을 같다>> 하자 매니저는 눈을 껌뻑이면서 어디 해보라는 식이였다. 나는 건축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공들을 찾아 사연을 말하고 전기스위치 하나를 얻었다. 전기스위치를 바꾸고 시험해 보니 테브 쏘는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갔다. 물론 원래의 스위치보다는 여러가지 공능이 없어 령민하지 못하지만 림시 쓰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우리는 하루일을 계속할수 있었다. 매니저는 엄지손가락을 내들며 << >> <솜씨가 좋다> 련속 칭찬했다. 그리고 일이 바쁜 나와 여러 악수를 청했다. 그후에도 나는 테브 쏘를 1년넘게 썼다. 물론 내가 바꾼 전기스위치를 그대로 둔채 말이다. 나는 절로 전기스위치를 갈아 바꿈으로써 회사를 위해 50달라의 돈을 절약했을 뿐만 아니라 하루일을 보장했고 회사에 두터운 신용을 얻었다. 후날 까다롭기만 하던 미국인 매니저는 나와 아주 친한 사이로 되였으며 내가 일이면 무조건 << >>이였다.

 밤마다 영어공부를 하는 나에게는 편안하게 앉아 공부할 테블이 필요했다. 그래서 건축현장에서 버리는 나무로 밥상겸 공부할수 있는 상을 하나  만들었다. 브라질에서 수입한 붉은 나무에다 이딸리아의 백송을 리용하여 정교한 밥상을 하나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모두들 내가 직접 만든 것이 맞냐고 물었다. 내가 확실하다고 하자  홈디포 같은 가게에 가져다 팔면 몇백달러는 받을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어 만들어 주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서 애리크는 킴이 집에 테블을 자기한테 물려 다라고 몇번이나 애원했다. 자기만 부지런하고 재간이 있으면 많은 돈을 절약할수 있다.              

미국에서는 라사하나 갈아 끼면 아무런 불편 없이 쓸수 있는 물건들이 버려지기 일수 이고 다리 하나 갈아 끼면 새것처럼 쓸수 있는 테불이나 걸상이 버려지는 것이 일상이다. 멀쩡한 텔레비나 랭장고도 주인이 쓰다가 싫증나면 길거리에 버려진다. 어떤 물건들은 마음씨 착한 주인들이 버리면서 물건에다가 쓸수있는 물건이라는  글을 적어 놓기도 한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시끄러움도 마다하고 자선단체에서 꾸리는 가게에 무상으로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러면 가게에서 이런 가장집물들을 수리하여 파는데 수익금으로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사는 나라 미국- 내가 나라에서 수리업종에 종사한다면 돈도 벌고 일하기도 쉬우련만  그보다 먼저 오래동안  쓰고 버리는 문화에 길들여진 같은 이방인이 쉽게 사고 버리는 이들의 뿌리깊은 문화를 개변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나도 쓰고 버리는 문화에 길들여 지기로 했다. 한방울의 물이 사막을 적시는것보다 사막이 한방울의 물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