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doc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나는 중국에 있을때 목회를 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두 번인가 교회에가 특강을 한적이 있다. 주제는 아마 <<생활에서 언어의 중요성에 대하여>>이런 제목인것 같다. 그리고 또 한국에가 광렬목사의 요청으로 인천하늘 교회에 가서 중국동포들에 대한 소개를 한적이있다. 교회의 연단에 서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교회에서 연설할 만큼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해보게 되었다. 교회의 연단에 서서 이야기를 할라치니 나를 쳐다보며 내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 내가 정말 부끄러움이 없이 떳떳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간의 사랑과 진실, 선함에 대하여 맨날 외우고 또 위우는 사람들 앞이니 말이다. 나는 어찌하다보니 교회의 집사도 많이 알고 목사도 여러명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그렇다. 특히 이곳 미국에 와서 생활하는동안 나는 많은 목사들이 교회에 나오라고 간곡히 부탁하길래 몇 번 나간적이 있다. 미국에 도착하여 생활상에서 목사들의 도움을 받았고 또 일자리도 해결해 주려고 동분서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한 감동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면목을 일으킨 미국 뉴욕 소망교회의 정진홍목사는 우리가 뉴욕에 도착하자 일자리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바쁜 시간을 내여 직업 소개소에 뛰여 다니였고 또 우리에게 며칠간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힘든것은 아직 시차에도 적응하지 못한 우리가 피곤에 몰리고 잠이 부족해 곤난을 겪으면서도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였다. 새벽기도부터 시작해 일요일이면 서너차례의 예배에 참가해야 했다. 신앙심보다 도움을 받고 얼굴이 가려워 믿는척 하는일이라 나는 정진홍목사에게 많이 미안했다. 후에 정진홍목사님은 나를 뉴욕에 있는 신학대학에 보내는것이였다. 그것도 나와 사전에 설명이 없이 뉴욕 퀸즈에가 만날 사람이 있다면서 무조건 자기 차에 타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차에 올라탔다. 퀸즈에 가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방에 들어가니 앞에 웬 사람이 앉아 있었고 량옆에 정진홍목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여러명 앉아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걸상에 앉았다. 그리고 앞에 앉은 년세가 있는분이 이것저것 나에게 물었다. 고향이 연변이라면서 어릴때 연변을 떠낫는데 우리 연변의 유명인사들도 알고있는 분이였다. 그런데 이분이 마치 나를 죄인 심문하듯 기분 나쁘게 대하는것이였다. 나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화가 났던 것이다. 속으로 "당신들이 뭔데 나를 불러 이렇게 심문하듯 대하는가?"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들이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원래 이들하고 한바탕 시비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도와준 정진홍 목사의 얼굴을 봐서 참고 있었다. 나중에 정목사와 이야기 하려고 참았다. 그런데 나는 결국 정목사와도 이야기 못하고 말았다. 그후 나는 다시는 교회같은데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주 큰 모욕감을 느끼였던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설교하는 이들에게 나는 속으로 "천국에 가고싶으면 당신들이나 가라"고 생각했다. 그후부터 나는 교회에 나가는것을 포기했다. 훗날 정진홍목사는 나에대해 아주 실망하더라고 했다. 마음에 있지도 않은 믿음을 흉내내고 싶지 않고 또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훗날 나는 또 뉴욕에 살고있는 양어머니 필복덕녀사님을 통하여 그가 다니고 있는 뉴욕장로교회에 여러번 나간적 있다. 늘 뒤구석을 차지하고 굿이나 보는 형편이였는데 한번은 필복덕할머니가 나를 기어코 교회에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그러면 소개하라고 응낙했다. 전제는 내가 교회에가서 그저 가만이 앉아 설교를 듣는것이였다. 사실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미국사회에 대한 많은 지식을 알수 있고 또 교인들과 면목을 일으키면 미국에서 생활하는데 아주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였다. 뉴욕장로교회 리영희목사는 내가 잘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1990년도에 그가 연변에 왔을 때 내가 백두산까지 안내하고 우리집에 와서 식사까지 하는등 여러 가지 인연이 있어서 모르는척 할수 없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리영희 목사를 만났고 그는 연변에 왔을 때를 회억하면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크 리스찬은 아니지만 리영희목사의 설교를 몇 번인가 듣고 그를 아주 존경해 마지 않았다. 그의 박식한 지식과 투철한 철학적견해는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것보다 못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뉴욕장로교회에서 소개를 받은뒤 인츰 뉴욕을 떠나 싸우스캐롤라이나에 가다보니 다시는 리영희목사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뉴욕을 멀리 떠나서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리영희목사를 알고 있었고 그의 덕망을 높이 칭찬하는것을 들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인교포신문들을 통하여 그의 소식을 간간히 들으면서 그에 대한 신망을 쌓아갔다. 그런데 그런 신망과 존중은 어느날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미국의 한인교포신문들은 동시에 리영희목사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대서 특필했다. 그 기사를 읽은 나는 실망과 함께 배신감을 느끼였다. 몇 번 먼나보지 못한 내가 이럴진대 몇십년동안 함께 교회를 꾸리고 또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실망은 어떠했으랴.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리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 여러 사람을 일시 속일수있고 , 한사람은 오래 속일수는 있으나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독일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생활철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성실이라는것이다. 나는 이것을 비단 독일사람들의 삶의 신조로만 여기지 않는다.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생활도리인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항상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목사가 해야 할일이요 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양심과 신념, 신조를 속이지 않고 량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목사도 교인도 모두 사람들이라 물론 우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신앙인이면 일반인보다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맨날 사랑과 정직을 말하는 그들의 리론대로라면 말이다. 나는 언젠가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심정의 본질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신학의 본질은 인간학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읽어봐도 기독교의 본질을 사랑이라는 두글자로 결론지을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믿음은 곧 사랑이다. 그런데 교회내부 사람들끼리는 교인들이 사기나 협잡, 혹은 다른 죄를 범하면 교인도 사람인데 그럴수밖에 없다는식으로 말하군한다. 일반사람들과 하나도 다를바 없다면 교회에 나가 무엇을 한단말인가? 나는 늘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게 살기를 결심하군 했다.

뉴욕장로교회하면 미국에서도 아마 한두손사락에 꼽히는 한인 교회일것이다. 교회에 들어가보면 내가 미국에 왔는지 서울에 왔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사람들이 많다. 한민족의 집합체같은 그런 신성한 장소라 생각되기도 했다. 이런 교회를 몇십년 이끌어오면서 리영희목사가 몇 년간 여성 성도들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다니 이세상에 진정 누구를 믿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그 사실을 나절로 전하기보다 미국한인들이 꾸리는 한국어신문들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옮긴다. 제목은 이렇다.

뉴욕장로교회 리영희담임목사 불륜관계 고백 파장

뉴욕에서 제일큰 규모의 한인교회인 뉴욕장로교회의 담임 리영희목사가 수년간 녀성 성도들과 불륜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2007 318 주일 예배때 리영희목사가 <<간음죄를 범하여 7계를 어겼다>>고 고백함으로써 사실로 들어났다.

뉴욕장로교회를 30년 가까이 특별한 잡음이 없이 시무해온 리영희목사는 올해 갑자기 안식년을 갖겠다고 발표를 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대외적으로 건강상 이유를 내세운채 34일 고별설교를 하고는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불과 2주일이 지난 이날 예정에 없이 주일 3부예배 시간에 나타나 교임들 앞에 섰다.

그는 "간음죄를 지었다. 진정으로 회개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지만 성도들 앞에 고백하기 위해 나왓다. 하나님께서는 다윗도 용서하고 간음한 여인도 용서하셨듯이 저도 용서하셨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용서를 구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이목사가 흐느끼면서 말하자 많은 교인들이 이목사에게 박수를 보내였다고 한다. <중간생략>

리영희목사는 30대와 50대의 두 여성도와 수년간 불륜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당사자들 간의 갈등이 확산되면서 이 문제가 밖으로 불거져 나왔다. <이하 생략>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리영희목사는 자신의 고백에서 수년간 불륜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면서 불륜이 들통난 2개월동안 죽음같은 반성의 나날을 보냈다고 했다. 만약 들통나지 않으면 반성하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수년간의 불륜관계를 맺어 오면서 한번도 반성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믿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깡그리 사라졌으며 그렇게 웅장하고 위엄있어 보이던 뉴욕장료교회도 훗날 지나가면서 보니 웬지 씁쓸하고 한산해 보였다. 목사에게도 신앙심외에 또 인간의 사랑심이 있다. 이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만약 한여자와 어떤 사랑을 하였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리해가 가지만 몇 명의 여성과 번갈아 가면서 불륜이 있었고 또 몇 년을 끌어오다가 상대방들이 자기들끼리의 모순이 곪아터져 밖으로 나오게 되자 할수없이 고백하는 식이 되었다. 이것은 신앙심이 없는 일반인에게도 도덕적인 책임과 추궁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제일 큰 뉴욕장로교회에서 30년간 담임목사를 한 사람이 이런일을 저질러 놓고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듯이 자신을 용서했다고 뻔뻔스러운 자태로 나왔으니 어처구니 없는 일로밖에 안보였다.

   교회에서는 물론 생활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야 할 사람이 순수성을 잃고 음욕의 충족과 세속적 목적의식에서 순수성을 망각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작태를 보고 기독교 신앙심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리해가 안가는 일이였다. 왜냐하면 성실해야 할 사람이 자기자신을 기만하면서 불륜을 저지르면서 진실성을 외면하고 비뚤어진 자기 리기적인 합리화를 놓고 변명하려는 그 비진실성은 더없이 추하게 보인다.  허구한날 하나님게 지은죄를 용서빌면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목사가 있음으로 하여 나는 한동안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일로 하여 뉴욕장로교회는 두파로 갈라졌다. 한쪽은 리영희목사를 용서하는쪽으로 결론을 짓자는 사람들이고 한쪽은 영원히 매장해야 한다는 쪽이였다. 용서하자는 쪽읜 그의 죄는 미우나 사람은 미워하면 안되며 리영희 목사가 수십년간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니 용서하자는 쪽이고 영원히 매장하자는 쪽은 수십년간 수많은 교인을 우롱하면서 교회의 명성을 더렵혔다는것이였다. 이일로 하여 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다 부정하는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있는 그린별에는 러씨아인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가 있다. 나는 미스터류와 함께 그교회에 다니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나와 같은 영어공부과정을 겪은 러씨아사람들이라 이야기도 쉽게 통하고 영어도 잘 그르쳐 주었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들어서면 자꾸 리영희목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것은 기독교생활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과 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표징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는 사람을 유혹하는 금단의 열매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일반인도 아니고 미국에서 유명한 목사가 이 금단의 열매를 삼키고 만인의 질타를 받고 있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던 리영희목사는 이세상에 그보다 중요한 인간 도덕이 있다는 공부를 그동안 너무 게을리 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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