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도 범죄

우리는 어릴때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에게 매를 맞는것을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라왔다. 우리 속담에 "귀한자식 매 하나 더 치라""는 말이 있다. 자식은 엄하게 키워야 된다는 말이겠다. 어떤 애들은 집안의 비자루가 부서지도록 부모에게 맞고 자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회초리에 다리가 멍들도록 맞으면서 자란다. 이렇게 자란 애들이 커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자식에게 매를 대는것을 우리는 폭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의 매라고 부드럽게 표현한다. 나도 어릴 때 할아버지의 곰방대에 머리를 맞고 쇼크할번한 일이 있다. 또 아버지에게 볼기를 얻어 맞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도 소학교때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십년동란이 한창인 때여서 력사반혁명분자인 아버지는 저녁마다 생산대의 우사마당에 끌려가 투쟁을 받으며 피투성이 되도록 얻어 맞았다. 그때 나이 어린 나는 아버지가 맞고 있는 현장에는 가지 못하고 집앞의 전보대뒤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아버지가 맞는 광경을 보며 눈물을 흘리였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와 할머니를 붙잡고 통곡하군 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온몸이 피투성이 되도록 얻어 맞고 들어왔다. 내딴에는 아버지를 동정한답시고 할머니팔에 매달려 통곡했는데 아버지는 사내녀석이 꼴기가 없다고 나를 욕했다. 그바람에 나는 서러워 목놓아 울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번에 나의 귀쌈을 후려쳤다. 나는 눈앞에 불이 번쩍일면서 울음을 뚝 끊쳤다. 아버지는 피투성이 된 얼굴로 나를 보면서 <<사내 녀석이 할머니를 위안하지는 못할망정 속상하게 너까지 울며 할머니를 괴롭히느냐>>고 나무랐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에게 평생 한번 맞은기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옛날 할아버지에게 맞았다고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 공부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연길에 시험치러 걸어 오다가 모아산에서 할아버지에게 맞았다고 했다. 철이 없다고 말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 맞고 나도 아버지에게 맞고 내아들녀석도 나에게 맞으며 자랐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도 나에게 맞으면서 자랐다. 이것은 엄연한 폭력행사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미 성년이 되고 부모가 된 조카들에게 미안함이 그지없다. 아마 내가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이 생생한것처럼 그들도 나에게 맞은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글을 쓰면서 그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런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더욱 깊어진다. 이런 일들이 미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아니,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다. 미국에서 우리의 할아버지들이나 아버지들, 그리고 나나 당신처럼 자식에게 손을 대면 이것은 엄연한 범죄인것이다. 미국에 와서 이런 전통적인 관습을 고치지 못하여 곤혹을 치른 사람들이 한두명 아니다. 나는 자식에게 매를 대였다가 실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살다가 미국에서 추방될 위기에 놓인 한국사람을 위해 추방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가한 적이 있다. 우리로 놓고보면 사건은 지극히 사소한것이였다. 2003 1111 , 자식의 교육 때문에 미국의 남부도시에 살고있던 한국인 리민희씨는 17살에 나는 딸 해미가 옷차림이 불량스럽다고 지적했다. 리민희씨 딸 해미는 그런 엄마에게 사생활에 대해 너무 관섭한다고 불평을 부렸다. 딸은 영어로 말했고 영어에 서툰 엄마는 한국말로 딸과 시비를 하여 이길 도리가 없었다. 결국 엄마는 딸에게 체벌을 가했는데 딸은 엄마를 폭행죄로 법원에 기소하였다. 당시 변호사선임이 없이 재판이 이루어졌는데 리민희는 2004 4월 첫공판을 통해 2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렇게 되자 뒤늦게 변호사를 선입하여 항소를 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 그렇게 감옥에서 2년간 실형을 살게되였는데 출소한 리민희씨는 가족들과 면회도 못하고 곧바로 이민국으로 이감되였다. 이민국에서 추방조치 여부를 남겨두고 있었다. 리민희씨의 딸 해미가 한쪽다리가 불구인점을 감안한 법원에서는 부모자식간인데도 엄마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쪽으로 손을 들었고 추방조치까지 내리게 되었다. 이민초기 미국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엄청난 화를 불러왔던 것이다. 현지 한국인협회에서 발벗고 나서 추방을 막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희망은 묘연했다. 우리에게는 사랑으로 귀결되는 부모의 매가 미국에서는 폭력으로 되어 딸이 엄마를 감옥에 넣은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음은 친구와 싸운 아들을 훈계하느라 회초리를 들었던 한국인 아버지가 아동학대(child Abuse) 혐의로 형사기소된 사건이다. 미국 서부 로스안젤스에서 살고있던 한국인 김씨는 자신의 7살난 아들이 놀이터에서 5살된 친구를 때린뒤 이를 타이르던 이 아이의 어버지에게까지 달려들어 싸움을 하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난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엎어놓고 엉덩이를 수차례 때리였다.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된 교사는 경찰에 아이의 아버지 김씨를 신고햇다. 교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동가정국(Dcfs)에 신고하여 김씨는 체포되였다. 김씨는 가정 법원에서 자녀 양육권을 유지시키되 5가지 상담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함의를 보았으나 Dcfs측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검찰에 사건을 송치시키였다. 미국의 형법상 관련규정은 아동 학대를 단순사건이 아닌 미성년자에 대한 육체적 상해(Phusicallnjury) 성적학대 (Sexual Abuse) 고의적 학대(Willful cruelty)육체적학대(Physical Abuse)등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로스안젤스 검찰은 이같은 법규에 의해 김씨를 중법(아동학대)혐의로 기소했다. 재판을 앞두고 있던 김씨는 중범 사실이 확정될 경우 최고 6년의 실형이 가능하며, 경범의 경우 1년까지 실형을 선곱받게 된다고 햇다. 그러나 김씨는 정당한 훈육행위에 대해 경찰이 무리한 법 적용을 했다고 한국식 사고로 반박하고 있었다. 자식에 대한 체벌로 매를 대여 적발된 한국인 학부모들이 자녀양육권을 빼앗기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으나 형사기소되는 경우는 그리 많치 않다. 미국의 문화를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면 이런 일들은 쉽게 발생될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동양인에게만 이렇게 엄한가? 자신들은 이면에서 더욱 엄격하다. 미국인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한 초등학교 학생이 자기 아버지와 함께 호수에 놀러갔다. 소년은 물이 깊은줄을 모르고 수영하려고 호수에 텀벙 뛰여 들었다. 그런데 수영을 잘 못하는 소년은 깊은 물에서 하마터면 물에 빠져죽는 사고를 당할뻔 했다. 아버지가 제때에 구해주었던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저기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자기가 호수에 뛰여드는것을 보면서도 위험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고의 원인이였다. 부모자식간에도 조금만 잘못하면 법원놀음이 일어나는 미국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매는 엄연한 폭력인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나는 미국사람들이 자식을 엄하게 욕하거나 매를 대는것을 한번도 본기억이 없다. 애들이 하루종이 께임기 앞에 앉아 있어도 공부하라는 소리가 없다. 나의 한국인 친구 챨리는 성격이 급하고 조폭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는 자식 넷이 있었는데 모두 애꾼들이였다. 집에서 그렇게 란동을 피우고 집안을 어지럽혀도 언제한번 큰소리 치는것을 못보았다. 한번은 챨리의 큰아들 포와 둘째아들 제크가 컴퓨터를 쓰는 일 때문에 말단툼이 벌어졌는데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챨리는 너무 화나 애들에게는 매를 들지 못하고 애매한 컴퓨터를 박살내였다. 챨리네 생홢형편에 컴퓨터 한 대를 다시 사놓는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였다. 우리같으면 애들한테 매를 들었을 일인데도 챨리는 애들에게는 감히매을 들지 못하고 있었던것이다. 이렇다 하여 미국의 애들이 자라나서 사람구실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자식의 궁둥이 하나 때리는데도 우리는 엄연한 문화차이와 법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으니 미국을 알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것이다.랑의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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