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집의 화려한 유혹과 고달픈 애환

중국에서 미국에 잠간 다녀간 사람들이 돌아가서 제일 부러워하는것이 바로 미국의 멋진 타운하우스들이다.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줄지어선 이런 집들은 미국에서는 타운하으스(Town house)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꿈에서나 그려볼수 있는 그런 환상 같은것이나 미국인들에게는 누구나 누릴수 있는 생활의 공간이다.대도시에서는 주로 아빠트가 류행하지만 교외에 나가면 모두 이런 양옥들이다.

텔레비나 영화에서 볼 때는 이런 집들이 나와 무관하게 그저 멋스럽고 부러울따름이였으나 미국에서 이런 집들의 인테리어나 나무마루를 깔고 깎는 작업을 하면서 나는 내 손으로 이 멋진 집들의 실내 일부분을 적지 않게 완성해놓았다.나는 아마 수백집을 드나들면서 실내를 장식하고 나무마루를 해놓았을것이다. 나만큼 미국의 양옥집에 대해 잘 알고있는 사람은 아마도 우리 고향사람들속에서는 드물것이다.계단의 란간이 몇개인것까지 환히 셀수 있고 그 구조를 눈을 감고도 그려낼수 있다. 그만큼 미국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습관도 세밀히 관찰할수 있었다.참으로 우리로서는 좀처럼 엄두도 못 낼 그런 생활을 미국사람들은 이 멋진 집안에서 누리고있는것이다.말하자면 궁궐같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인들의 생확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그렇게 우아하고 멋진 집들이 어떻게 사고 팔리는지를 알게 되였고 그것을 소유하고있는 사람의 고민도 차츰 알게 되였다.

미국의 많은 건축회사들에서는 좋은 장소(LOCATlO)에 땅을 사고 한꺼번에 타운하우스를 짓는다.물론 외관부터 실내 장식과 가구 그리고 전기기구까지 다 갖추어놓는데 사는 사람은 이사짐만 싸들고 들어와 자기의 취미대로 배렬해놓으면 그만이다. 요즘 우리들처럼 아빠트에 벽만 해놓고 집안의 타일이나 문짝과 장식 같은것을 집을 산 사람이 자체로 하게 하는 그런 식이 절대 아니다.모든것을 완벽하게 해놓고 사는 사람은 먼지 청소도 하지 않는다.이렇게 완벽하게 되여있는 집들이 길옆에 줄지어 서있고 타운의 입구에서는 수많은 채색기와 집에 관한 광고기발들이 날리면서 행인들을 유혹한다. 미국에서는 누구나를 막론하고 모두 이런 집을 살수 있다.은행의 신용만 좋으면 하루사이에 은행융자를 맡을수 있기때문이다.은행은 신용만 좋으면 어떤 사람에게나 돈을 빌려준다. 지어는 80살 되는 로인들에게도 30년 기한으로 돈을 갚게 하면서 몇십만딸라씩 빌려준다.80살 되는 로인이 30년을 더 살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만 은행은 그런것을 고려하지 않는다.은행은 돈을 빌려줄 때 매달 6% 혹은 7%의 리자(수시로 변함)를 갚게 한다. 만약 그 리자를 한달만 갚지 못해도 은행은 약속대로 집을 몰수해간다. 집은 해마다 값이 오르고있으니 은행은 집이 있는 한 돈을 받지 못할 걱정은 하나도 없다. 80살 되는 로인이 어느날 갑자기 줄어서 한달만 은행의 돈을 갚지 못해도 은행에서는 즉시 집을 차압한다. 로인뿐만아니라 누구도 마찬가지다. 한달만 신용을 지키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나는 장면들을 우리는 텔레비나 영화에서 많이 보아왔다.이것이 바로 미국이다.한번만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신용이 떨어질때로 떨어져 다시는 집을 사기 힘들어진다. 하기에 젊은 층들도 이런 타운하우스를 샀다가 은행의 돈을 갚기 힘들면 팔아버리고 아빠트에 세를 들어 사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은행의 돈을 빚지고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다 아빠트에 세를 들어 살고있다. 그러기에 미국사람들은 거의 빛을 지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집뿐만아니라 차도 월부로 사니 매달 몇백딸라씩 갚아야 하고 집값도 어김없이 갚아야 한다.

내가 살고있던 고장에서 복덩방을 하고있는 미국인 매어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잘 나간다는 부자동네에서도 거의 빛을 지고있으며 은행의 빛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것이다.은행에 집을 빼앗겨 신용이 떨어지기전에 팔아치우고 은행의 빚을 갚는다.집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과 애착은 특별하다. 미국에서는 늦게 결혼하는 청년들이 많다. 만약 이들이 서른살에 결혼하여 30년을 기한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산후 그 돈을 다 갚고나면 60살이 된다. 그러니 내 집을 만들기 위해 30년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내 집 마련에 매달리는것이다.40만딸라를 은행에서 빌리여 집을 사고 30년동안 리자를 갚으면 몇배가 된다.은행의 리자를 6%로 계산한다 해도 매달 2400딸라씩 은행에 갚아야 하는데 일년이면 2만 8800딸라,10년이면 28만 8000딸라가 되는 셈이다. 은행에서 빌린 원금은 리자에 따라서 1년,2년 줄어드는데 30년 기한이 되면 리자도 끝나고 원금도 없어진다는것이다.

미국사람들을 상대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집때문에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것이다.

나의 헤우퍼(HELP) 도우미 애리크는 꼬스따리까에서 정식으로 비자를 받아가지고 처자와 함께 5년전에 미국에 왔다. 나보다 1년 먼저 미국에 왔는데 영어도 제법 잘했다. 미국 전역을 돌면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내가 사는 이곳 그린별에 정착했는데 18만딸라짜리 타운하우스를 샀다.가끔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느라 그의 집에 가보았는데 정원도 좋았고 집안도 잘 꾸며놓았다. 처음에 나는 그의 집에 가보고 적잖이 놀랐다.5년 동안에 미국에 와서 이만큼 자리잡자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내가 처음 애리크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이방저방 다 구경을 시켜주면서 크게 자랑을 했다.나는 그가 5년동안에 돈을 많이 벌었구나 하고 생각했다.그런데 얼마 안 가서 나는 애리크의 생활을 바닦까지 엿볼수가 있었다.

12살 나는 큰아들과 5살 난 둘째아들에 안해까지 네식구가 사는 이들의 생활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안해까지 일을 하면서 둘이 벌지만 이들은 늘 돈때문에 시달리고있었다. 애리크는 쩍하면 나한테 돈을 빌리였는데 갚은적은 한번도 없었다. 처음에는 20딸라씩 몇번인가 빌리더니 나가 갚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다음부터는 2딸라 혹은 1딸라씩 빌리는것이였다. 내가 주유소에 가서 커피를 마실 때면 물론 애리크의것까지 사주지만 이 자식은 늘 자기것만 달랑 사서 마시군 했다.담배 살 돈마저 없어 나한테서 빌릴 때마다 담배를 끊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담배를 끊지 못했다. 내가 왜서 너의 담배값까지 내야 하는가고 하면 애리크는 어꺠를 들썩하고는 만다. 때로는 돈보다도 그의 상투적인 이런 습성이 짜증나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없다고 주지 않았다. 애리크는 늘 나에게 자기의 신용카드를 자랑했는데 그 카드에 돈이 얼마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이 자식의 돈지갑은 늘 비여있었다.주급을 받은 이튿날에는 지갑에 몇딸라씩 갖고 다니다가도 한 이틀만 지나면 또 빈털터리다.돈을 안해에게 다 빼앗겼는가고 물으면 그저 웃고만다.애리크의 점심도시락은 허술하기 그지없다.멕시칸음식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영 부실했다. 그래서인지 애리크는 내가 먹다남은 도시락반찬을 늘 깨끗이 먹어치우고 매일 퇴근해서는 내 아빠트에 들려 커피 서너잔씩 게걸스레 마시고 갔다. 나는 먹는것때문에 기분 상해할가봐 늘 모른척했다. 그리고 코리안음식이 맛있다고 하면서 나에게서 여러가지 밑반찬들을 가져갔다. 혼자 있는만큼 많이 먹지 않으니 때로는 그럿채로 주어보냈다. 그러면서도 애리크의 경제상황이 극치에 닿고있는줄은 몰랐다.

어느날 아침 작업하러 나가면서 갑자기 차에서 통곡을 하는 애리크를 보았다. “헤우푸 미 헤우푸 미(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것이였다.내가 영문을 물어도 그는 그저 울기만 했다.서럽게 우는데 자꾸 물을수도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다. 저녁에 퇴근하여 나의 아빠트에 들린 애리크는 마음이 얼마간 진정되였는지 나에게 실토정을 하는것이였다. 너무 생활이 어려워 집을 팔았다는것이였다.은행의 빚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악기기전에 팔아서 돈을 갚고 신용을 지키겠다는것이였다.이처럼 미국에서는 신용이 중요한것이다.최근에는 안해가 아파서 일을 못하니 도저히 생활을 지탱할수 없다는것이였다.집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는것이 그의 말이다.

애리크는 아메리칸은행에서 18만딸라를 빌려서 집을 샀다.그런데 매달 리자만 1440딸라씩 내야 한다는것이다.자기가 겨우 한달에 2000딸라씩 버는데 은행의 빚만 1440딸라를 갚고 나머지로 전기세,물세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세금을 물고나면 도저히 생활이 안된다는것이였다.그래서 아빠트에 이사하기로 했다고한다.그런데 아빠트에 들자해도 그 돈 역시 만만치 않아 이제는 안해와 애들을 꼬스따리카에 보내고 자기도 나처럼 싱글로 있겠다고했다.그것이 최선의 아메리칸생활방법이라고 그는 말했다.그러면서 또 서럽게 우는것이였다.어머니가 생각나고 고행생각이 난다는것이다.그러는 애리크를 보면서 나는 내 나이 서른다섯에는 어땠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미국에서 내 형편도 누구를 동정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후부터 나는 늘 애리크에게 측은한 마음이 갔다.과연 얼마후 애리크는 좋은 집에서 살다가 아빠트의 친구들속으로 들어가버렸다.그런데 일이 묘할라고 그랬는지 나는 며칠사이에 이런 일을 두번이나 목격해야 했다. 

어느날 풋면목이나 아는 미국인 쌤(sam)이 자기 집 마루에 기츰칠을 해달라고 요청해왔다.내가 가보니 집을 판다고 써놓았고 이사짐은 이미 다 들어내간 상태였다.처음에는 사업현장이 멀어서 그쪽에 있는 아빠트로 이사를 간다고 하더니 나중에 쌤의 안해가 실토정을 하였다. 사실은 집의 유지비가 너무 비싸 도저히 살아갈수가 없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집을 처분하고 아빠트로 이사를 간다고 하였다. 내가 한달에 집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가고 물으니 5000딸라가 없이는 금방 집을 은행에 빼앗긴다는것이였다.나는 호기심에 그에게 집 유지비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쌤의 이야기를 했더니 "이것이 미국생활이다"라고 하는것이였다.내가 신경쓰지 않았을 때에는 몰랐지만 이런 집이 한두집일수가 없다.미국에서 거의 몇십년 생활한 미국적 중국인인 류작인씨의 말에 의하면 은행의 돈을 빌려 집을 산후 빚을 갚지 못하여 집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비일비재라고 한다.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것과 이들의 현실생활은 차이가 많은것이다. 이런 상황을 몰랐을 때, 미국의 집들에 들어가 일하다보면 한번 이런 호화로운 집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상상을 할 때가 많았었다.하지만 이들이 살고있는 그 내막을 알고난후부터는 그런 생각이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겉보기에 아주 멋지고 호화로운 주택에서 윤택이 나게 사는것 같은 미국인들의 생활 리면에는 이들만이 안고 사는 이런 고통과 불안이 동반돼있는것이다. 은행의 돈을 빌리지 않고 자기의 현금으로 몇십만딸라씩 하는 집을 살수 있는 비률은 만명당 한 사람이 될가말가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사람은 미국에서 30년간 생활해온 미스터 송이다.미스터 송도 숱한 고생을 하면서 미국생활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 몇번이나 한국에 돌아가려다가 주저앉았는데 고생고생하면서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하고나니 인생이 벌써 60에 다달았다고 한탄했다.이것이 바로 미국인들이 사는 그들만의 방식이고 그들만의 세계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