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미국청년 저스턴(Justun)

미국의 백인청년 저스턴은 내가 미국에서 사귄 친구이자 영어선생이다. 23, 나의 아들과 동갑인 그는 아주 소박하고 순진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년령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친구로 잘 통했다. 미국에서는 교제할 때 나이차이가 별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물론 같은 나이 또래끼리 사귀는것이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이기도 하지만 상대가 로인이더라도 특별히 웃어른 대우를 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어떤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가 한두살 많게 말하지만 미국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보다 한두살 적게 말하기 좋아한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젊었다는것에 더 포인트를 둔다. 미국에서는 상대보다 한두살 년하라고 말하는것이 미덕으로 되였다. 년상은 그만큼 묵었다는 요소이며 부정적인 요소를 나타내기때문에 미국에서는 젊음에 력점을 많이 두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밝은 색 옷을 많이 입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로인들이 밝고 무늬가 있는 가벼운 옷을 많이 입는다. 미국에서는 손자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는것을 보면 마치 가까운 친구끼리 일하는것 같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보였지만 후에 적응되니 정말 보기 좋았다. 나도 귀국하면 아들하고 친구처럼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이때 저스턴이 스스럼없이 내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다가왔다.

내가 저스턴을 처음 알게 된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미국에서 마루 까는 일을 위주로 한 나는 매일과 같이 회사의 지령대로 미국인들의 개인집을 상대로 일했다. 어느날 회사에서 적어준 주소대로 애틀란타(Atlanta)에서 버지니아로 향하는 85번 고속도로에서 북으로 30분간 달리다가 70번 출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챨스톤에서 직접 로스안젤스까지 통하는 26번 고속도로에서 한시간가량 달리다가 75번출구에서 다시 14번국도로 빠져 30분간 달리다보니 싸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경계지역이 나타났다. 거기서 다시 시골길을 따라 20분간 북으로 달렸다. 미국에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참 좋았다. 길 량켠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 마치 꽃밭속으로 달리는듯했다. 그리고 길가에서 서성거리는 노루, 사슴은 말할것도 없고 깃을 펴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공작새까지 가끔 볼수 있어 식물원이나 동물원에 들어선것 같았다.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내가 주소대로 찾은 곳은 깊은 산골의 포도밭속에 자리잡은 외딴집이였다.

미국에서 부자들은 보통 번화한 곳보다는 한적한 곳이나 삼림속에 집을 짓고 조용하게 살고있다. 대낮인데도 집을 짓는 현장 답지않게 벌레우는 소리만 요란할뿐 아주 조용했다. 그곳에서 웬 백인청년이 홀로 페인트칠을 하고있었다. 그가 바로 저스턴이였다. 미국에서는 처음 만나도 서로 인사를 나눈다. 우리는 굿 모닝(Good morning)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기할 일을 열심히 했다. 휴식시간에 나는 저스턴에게 접근했다. 나는 항상 일하는 현장에 영어학습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미국인들에게서 영어발음훈련을 지도받았다. 나는 그날 적은 영어문장을 꺼내들고 저스턴에게로 다가갔다. 먼저 자아소개를 하고 물었다. 저스턴은 상세하게 열심히 발음을 교정해주고 여러번 시범으로 발음하면서 친절하게 가르쳤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나는 7월의 무더위에 한동안 영어발음을 했더니 갈증이 났지만 나는 마실것이 없어 그냥 참았다. 저스턴도 갈증이 났던지 자기 아이스 박스에서 음료를 꺼내 마셨다. 그의 아이스박스에 음료가 많았지만 권하지 않고 혼자 마셨다. 누구에게 무엇이나 권하는 습관이 없는 미국생활에 인젠 습관된 나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런대로 갈증을 참았다. 그날 헤여지면서 나는 저스턴과 래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튿날 또 그 뽀레스트(Forest 숲 삼림)속에 자리잡은 집으로 일하러 갔다. 거리가 멀어서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10시가 되였다. 일을 시작한후 거의 두시간이 지나서야 저스턴도 일하러 왔다. 점심 12시가 다 되였다. 나는 배가 고팠는데 저스턴은 먼저 록음기를 틀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면서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빵을 꺼내 먹으며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저스턴과 서먹서먹한 사이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일만 했다. 오후에 저스턴이 휴식하는 틈에 나는 또 영어공부노트를 들고 다가갔다. 나는 저스턴에게 아이스박스에서 금방 꺼낸 시원한 콜라를 권하면서 영어 몇마디를 물었다. 그는 내가 주는 콜라를 받으면서 좀 당황해하는 눈치였고 련속 땡큐베리머취(Thank you very much 미국사람들이 제일 흔히 하는 인사말)를 웨쳤다. 나는 저스턴과 함께 휴식시간을 보내면서 서투른 영어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일하고있는 이 집은 저스턴의 부모집이였다. 저스턴이 어렸을 때 리혼했는데 그는 어머니를 따라 계부와 함께 살고있었다. 계부는 이곳에 큰 포도밭을 가지고있는 부자였다. 저스턴은 멀리 바라보이는 포도밭을 가리키면서 모두 계부의 재산이라고 했다. 저스턴은 계부에게 대명사를 쓰면서 자기를 포함시키지 않은 히즈(His)의 재산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 부모가 새로 짓는 집에서 일하면서 시간당 12달러씩 받고있었다. 내가 1시간이면 끝낼 일을 그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했다. 마치 일한다기보다 심심풀이로 락서를 하는것 같았다. 일하면서 음악을 듣고 전화하고 콜라를 마셨다. 사흗날 나는 일찍 일을 끝냈기에 베란다에 걸터앉아 두다리를 흔들며 멀리 포도밭을 바라보고있는 저스턴과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영어수준으로 그의 말을 다는 리해할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이야기는 그런대로 통했다. 저스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포기했다. 그의 꿈은 세계를 일주하는것이였다. 바로 려행이 그의 인생목표였다그는 일찍부터 일하면서 그 준비를 했다그는 자가용에 세계를 소개하는 《매가진》(magazine 잡지)을 가득 싣고 다녔다. 시간만 있으면 그런 잡지들을 뒤져보았다. 중국으로 오면 내가 안내하겠다고 하니 앞으로 꼭 중국에 갈 기회가 있을거라며 나를 만나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고 실토정했다. 사실 저스턴이 정말 중국으로 온다 해도 내가 안내할 시간이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서 영어공부를 하고있는 아들을 념두에 두고 말했다. 내가 아니면 아들이 너를 맞을것이라고 하니 저스턴은 더 반가와했다. 밝게 웃는 저스턴은 천진하고 사랑스러웠다. 사실 처음에는 미국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이 부담스러웠고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가 어지간히 통해 이야기를 나누니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10일간 저스턴의 집에서 마루를 깔고 깎는 일과 여러가지 잡일을 했다. 그사이 저스턴과 더 가까와졌다. 저스턴이 내 이야기를 부모들에게 전해 그들도 나를 킴(kim)이라 부르며 허물없이 지냈다. 어느날 나는 정식으로 그와 협상했다. 일요일마다 저스턴이 나의 아빠트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고 내가 그 대가로 중국어를 가르치기로 합의했다. 저슨턴은 나의 영어선생이 되고 나는 그의 중국어선생이 되였다. 내가 중국어를 가르치는것은 응당 그에게 지불해야 할 보수를 미봉하기 위해서였고 저스턴도 그것을 원하고있었다. 일요일마다 저스턴은 나의 아빠트에 와서 영어를 가르쳤고 나는 그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가 중국어발음을 아주 정확하게 했다. 저스턴은 열심히 중국어를 배웠고 얼마후부터 중국어로 好,朋友하고 제법 류창하게 인사했다. 나는 배울 영어내용들을 준비한후 그의 발음을 록음하고 다음주까지 수백번씩 받아 외우고 썼다. 저스턴도 나의 노력에 감탄했다.

한번은 저스턴이 아빠트에 왔다가 벽에 걸려있는 중국영화배우들의 사진이 있는 달력을 보더니 자기한테 중국녀자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미국녀자보다 중국녀자를 안해로 맞고싶다고 했다. 나는 달력을 내려 테블우에 펼쳐놓고 마음에 드는 녀자를 고르라고 했다. 물론 롱담이였다. 그런데 저스턴은 진지하게 달력 12장을 이리 번지고 저리 번지면서 마치 진짜로 대상을 고르듯했다. 제일 이쁘지 않은 녀자를 가리키며 이런 스타일의 녀자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미국사람들이 동양인의 미모에 대한 기준은 중국사람들과 달랐다. 우리는 동양의 미인을 론할 때 닭알형의 얼굴에 버들잎 같은 눈섭, 작은 입술에 아무튼 지극히 작고 예쁜것들에 기준하지만 미국사람들은 굵은 륜곽과 선에 기준했다. 미국의 텔레비죤에 가끔 동양인 아나운서들이 나오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추녀들이였다.

어느 토요일저녁 저스턴이 전화를 걸어왔다. 래일은 레스토랑보다 나의 아빠트에서 음식을 맛보고싶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저스턴이 오면 점심은 중국뷔페에 가서 부담 없이 마음껏 골라 먹게 했다. 처음 저스턴은 각자 먹은것을 AA제로 하자고 했다. 나는 중국에서는 아직 그런것에 습관이 안되여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하여 식사값은 내가 지불하고 팁은 그가 냈다. 언제나 내가 음식값을 지불하는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저스턴은 래일은 꼭 아빠트에서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싶다고 했다.

이튿날점심 나는 여러가지 중국료리를 정성껏 만들었다. 그동안 저스턴이 열심히 영어를 가르쳤기에 나의 영어수준이 많이 제고되였다. 나는 직접 한번 정성들인 음식을 접대하고 싶었다. 그런데 점심상에 마주앉은 저스턴의 얼굴이 이상했다.그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료리마다 고기를 다 넣었다. 그는 미국의 동물을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이였다… 나는 랭장고를 열고 먹고싶은것을 고르라고 했다. 저스턴은 모두부 와 내가 담근 깍두기를 꺼내더니 자기가 맛을 보아도 되는가고 물었다. “슈얼!”(sure) 내가 물론 된다고 대답하자 그는 깍두기를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했다. 그날 점심 저스턴은 밥에 모두부 그리고 깍두기 한그릇을 다 비우고나서 정말 잘 먹었다고 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였다. 미국사람들은 동양사람들처럼 마음에 없는 입치레를 하지 않는다. 저스턴이 깍두기를 너무 좋아하기에 나는 랭장고에 있던것을 플라스틱그릇에 담아 주고 중국의 좋은 차잎까지 곁들어주었다. 원래 영어를 가르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면 제일 간단하지만 그것은 너무 형식적인것 같았다. 나는 정을 주고받으며 많은 추억을 만들고싶었다. 몇시간후 집으로 돌아간 저스턴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자기가 지금 다시 나의 아빠트에 가도 되는가고 물었다. 나는 물론 다시 와도 괜찮다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는가고 물었다. 그는 잠간 볼일이 있다고 했다.

저스턴은 나에게서 깍두기와 차잎을 받은 대가로 클래식음반(classic CD)을 십여장 들고 왔다. 그가 일하면서 음악을 틀어놓으면 나는 좋은 음악이라고 칭찬하고 나도 음악을 좋아한다고했다. 생각밖의 선물을 받은 저스턴은 나에게 무언가를 갚으려고 했다. 미국인들의 철저하고 분명한 인간관계앞에서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그후 저스턴은 자기 어머니께서 나를 집으로 초대하고싶어한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나와 동갑이였는데 아주 상냥하고 자상했다. 그러나 그의 집에서 일할 때 너무 꼼꼼하여 잔소리를 많이 하여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 덕분에 빈틈없이 일했기에 그들도 만족했고 회사에서도 칭찬했다.

저스턴의 어머니는 내가 보낸 깍두기가 아주 맛있다면서 킴(kim)의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칭찬했다. 나는 저스턴의 집에 초대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왜냐 하면 미국사람들과 많이 접촉해야 영어를 배울수 있고 또 미국사람들의 생활을 료해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저스턴이 헤여질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오간것은 락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마가을의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영어공부가 끝난후 저스턴이 물었다. 중국사람들도 개고기를 먹고있는가?”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먹고있다고 했다. 킴도 먹었나?” 나는 먹었다고 했다. 순간 저스턴의 얼굴에 한가닥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그는 어떻게 먹는지 상세히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가끔 먹어본 기억이 난다고 간단히 말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 어른들이 동네에서 개잡이를 할 때의 상황을 될수록 상세히 설명하려고 손짓 발짓까지 하면서 묘사했다. 갑자기 저스턴의 천진하고 사랑스럽던 웃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어떤 야만인을 처음 보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어색하게 차겁게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아차, 실수를 웨쳤다. 그날 저스턴은 무표정하게 나와 헤여졌다. 그리고 나에게 간단히 말했다. 빠이 킴(bye kim) 늘 말하던 앞에 Good자는 빼고말이다.그후 저스턴으로부터 전화가 없었다. 내가 몇번인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잘 알고있기에 그후 나도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훌륭한 영어선생을 놓쳤고 저스턴도 아마 중국에 오고싶은 생각이 없어졌을것이다. 그의 세계일주려행계획에서 중국이나 혹은 개고기를 먹는 나라들은 제외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스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또 개고기를 먹을것이다. 저스턴 너를 생각하면서.

미안해 저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