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고독하여 즐거운 사람들

5년이란 짧지 않은 미국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것은 고독이였다. 일하는 외의 모든 시간은 집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텔레비죤을 시청하고 책을 읽는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낚시질 하거나 다른 취미생활이 있지만 고독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과의 만남만이 고독에서 해탈될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다. 내가 살고있는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그린별(Greenville)이라는 작은 시가지는 미팅과 교제를 허락하는 동양적인 환경이 없었다. 그린별이란 이름은 우리 말로 푸른 마을이라는 뜻인데 말그대로 이 시가지는 다운타운쪽에(DOMNTOUN) 높은 빌딩 몇채가 숲우에 솟아있을뿐 온 마을이 대부분 숲속에 묻혀있다. 이곳에는 한국사람도 많지 않고 연변사람도 몇명 되지 않았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고 일이 바쁘기에 별로 만날 새가 없었다. 나는 복잡한것을 싫어하기에 처음에는 책을 읽고 다양한 체널의 텔레비죤을 시청하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는데 얼마후에는 그것도 싫증이 나고 사람이 그리웠다.

고향에서 나는 텔레비죤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업에 종사했기에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삐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런저런 술좌석에 참석하여 때론 녹초가 되도록 술을 마시다보니 거의 남의 정신에 산것 같았다. 이렇게 매일 옛 친구, 새 친구를 만나 즐기면서 생활이 따분하다고 늘 불평을 부렸다.

미국에서는 그런 생활은 꿈도 꿀수 없었다. 미국인들은 철저하게 가정위주 그리고 자기위주의 생활을 영위하고있었다. 고향에서 퇴근시간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와서 가족은 뒤전으로 하고 밤늦게까지 밖에서 나돌았지만 미국사람들은 퇴근종이 울리면 하던 일손도 놓고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하루 사업시간외에 모든 시간은 집에서 그리고 가족과 함께 보냈다. 간혹 누구와 만나서 식사할 일이 있으면 며칠전부터 약속이 오가고 또 가족을 동반해야 했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어떤 모임에 참석하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취급을 받기 쉽다. 미국사람들뿐만아니라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생활방식에 적응되였거나 서서히 적응돼가고있었다.

내가 아는 미스터 류라는 중국사람은 50대 중반인데 안해와 별거하여 살았다. 그렇지만 어떤 모임에 갈 때는 서로 전화하여 부부동반으로 참석한다고했다. 남자나 녀자나 제가끔 간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되여버렸다. 서로 헤여졌지만 미스터 류는 모임에서 부부처럼 행세했다. 이들의 이런 생활방식은 미국사람들에게서 배운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예 어떤 파티에나 가지 않았다.

자기중심, 가족중심의 미국사람들은 그 주위의 환경이 제약되여 고독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적응되고 나중엔 즐겼다. 농경사회에서 마을단위의 생활에 절어온 우리와는 달리 미국사람들은 식민지시대와 서부시대를 거치면서 류랑과 같은 유목생활로 삶을 영위하며 고독에 길들여졌다. 다른 사람의 생활에는 근본 관심이 없고 오직 독립자존,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움직이는 다분히 미국적인 존재방식을 만들어왔다. 우리는 서부영화와 소설들에서 이런 내용들을 너무 많이 접했다.

몇여백년을 내려오면서 형성된 미국사람들의 문화에 우리가 적응된다는것은 말그대로 눈 감고 야옹하기였다. 얼마전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미국에 이민한 사람들이 그 후예가 태여나고 자라면서 미국사람들속에서 살아도 완전한 미국사람이 되기가 어렵다는것이다. 이는 미국사람들의 오만이겠지만 인젠 그 민족의 뿌리에 디엔에이(DNA)까지 거론하고있다. 미국에 온지 몇년 되는 사람들이 완전히 미국사람들의 행세를 하는것은 꼴불견이다. 조상 3대를 미국에서 살아온 순수한 백인들도 자기들을 순 미국사람으로 보기 어렵다고 시인하는데 미국으로 온지 몇년밖에 안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일부 고향사람들이 완전히 미국사람들의 행세를 하는것은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숭상인것이다.

한동안 나에게 칸츄락션(Construction 건축, 건설업)현장에서 만난 대니라는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한살 어린 그는 작은 회사의 사장인데 미국동남부 특유의 구레나룻때문에 나는 처음 늙은인가 생각했다. 미국에서 다른 사람의 나이를 묻는것은 실례이기에 그렇게 짐작했다. 손자손녀가 뛰여다니기에  60대 후반인줄 알았는데 후에 인터뷰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량해를 구하고 나이를 물으니 이들 부부는 나보다 한살 아래였다. 대니네 집을 방문하게 된것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기 때문이였다. 어느 일요일날 짬을 타서 자기 집 2층의 나무마루를 수리해달라고 했다. 물론 보수는 후하게 계산되였다.

나는 함께 일하는 고향에서 온 동생 미스터 김과 함께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시가지에서 40분가량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미국에서 차로 40분 거리면 중국에서는 백리에 해당된다. 약속한 장소에서 대충 모닝커피를 마시는 동안 대니가 나타났다.

우리는 대니를 따라 깊은 시골길에 들어섰다. 이미 시내와 많이 떨어졌는데 아직 많이 더 가야 된다고 말했다. 대니가 앞에서 차를 몰았는데 도저히 멈출줄 몰랐다. 시골의 오불꼬불한 길을 따라 30분 더되게 차를 달렸다. 포장도로여서 시속 40마일로 달렸는데 꽤 지루했다. 시속 40마일로 30분간 달리면 중국에서 50리는 될것이다. 드디여 목적지에 도착하니 어떤 산의 정상이였는데 거기에 별장 같은 대니의 집이 있었다. 매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대니는 이렇게 먼 거리를 오갔다. 대니는 매일 평균 150마일 내지 200마일을 차로 왔다갔다했다.

대니는 인츰 우리를 2층 베란다로 안내했다. 끝없이 펼쳐진 숲이 보이고 아츠랗게 먼 곳에 다듬은듯이 깎아놓은 커다란 바위산이 보였는데 나는 맙소사”(My God)를 곱씹으면서 감탄해마지않았다.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듯했다. 대니는 잘 생긴 구레나룻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미국사람들에게는 칭찬에 린색하지 말아야 했다. 나는 과장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아는 영어단어를 총동원하여 칭찬했다. 우리는 열심히 나무마루를 수리했다. 자주 만나는 처지기에 빈틈없이 일했다. 미국사람들은 아무리 얼굴이 뜨거운 말이라도 마음에 두지 않고 숨김없이 했다. 후에 대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나무마루를 잘 수리해주어 고맙다며 악수했다. 작은 일에도 늘 감사해하는것이 미국사람들의 미덕이다.

그날 일이 끝난후 나에게 대니부부와 인터뷰를 할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먼저 정식으로 나는 중국에서 살고있는 조선족이고 텔레비죤방송국 아나운서라고 소개했다. 여유시간에 미국에 대한 글을 쓰고있는데 인터뷰를 할수 있는가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의 신분을 똑똑히 안후부터 대니는 한결 더 친절했다. 그들은 흔쾌히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 나의 낮은 영어수준때문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수 없었으나 그들 부부는 짜증을 부리지 않고 격려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이런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후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선말과 중국어 그리고 영어 세가지 언어를 총동원하여 적었다. 스스로도 우습고 재미가 있었다. 마치 유엔(UN)의 보고를 듣는것처럼 세 나라말을 사용하고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있으니 정말 행복해보인다.”고 내가 말했다. 대니는 감사하다면서 이곳이 조용하여 좋다고 거듭 반복했다. 나는 조용하고 경치도 좋은데 고독하지 않은가고 물었다. 그러자 대니의 와이프 제인은 자기들은 고독이 즐겁다고 했다. 즉 고독하여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취재하며 인터뷰를 했지만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원래 대니네는 지금의 집에서 몇마일 떨어진 산아래에서 살았다. 그때도 조용한 곳을 찾아 집을 지었는데 이웃에 다른 사람들이 집을 짓고 이사를 오는 바람에 더 한적한 곳을 찾아 지난해에 이곳에 집을 짓고 이사했다. 명절이나 휴식일에는  어떻게 보내는가고 물으니 그들 부부는 사냥을 하거나 낚시질한다고 했다. 주로 부부동반인데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나는 낚시질을 그처럼 즐기는 친구들이 언제 한번 와이프를 동반하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다.

대니 와이프는 자기가 40파운드 되는 고기를 낚은적이 있다면서 서랍에서 그때 찍은 사진을 꺼내보이며 자랑했다. 그녀는 마치 공훈메달이나 탄듯이 흥분했다. 대니도 뒤질세라 자기가 사냥한 개만한 고양이의 박제품을 보였다. 나는 그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찍었다. 취재분위기를 더 내기 위해서였고 고향으로 돌아온후 고독을 즐기는 이 사람들을 추억하기 위해서였다.

대니 와이프는 또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한때 자기는 가수가 꿈이였다고 했다. 그녀의 노래도 거의 수준급이였다. 그런 와이프가 사랑스러운지 대니는 내앞에서 안해에게 연신 키스를 퍼부었다. 대니네는 아들딸이 있었다. 아들은 이미 장가 가서 독립했고 딸은 대학에서 간호사 공부를 하는데 오래지 않아 간호사가 된다고 했다. 그들 부부만 큰 집에서 살고있는것이 아주 고독해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고독하여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차츰 그들을 리해할수 있었다. 그들 부부가 고독하여 즐겁고 행복한것이 아니였다.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여 고독도 즐겁고 행복한것이였다. 그런데 왜서 그들이 그처럼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생활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낄가?! 이것이 바로 생각의 차이, 문화의 차이인것이다. 이런 문화의 차이가 있어서 세계는 넓은것이다. 또 세상이 넓어서 이런 차이들이 있는것이다